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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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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 박태준

청암의 고향인 임랑마을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청암의 삶이 녹아있는 은유화된 건축물
그의 인생과 철학을 살펴보고 자신을 비추어 보며 사색에 잠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

기업인

靑巖 기업인이 되다

1960년대 초 대한민국은 수출 1억 달러로 희망이라는 단어조차 낯설게만 느껴지던 경공업 중심의 후진국이었습니다.
그때 청암은 기업인이 되어 두 번째 보국에 나섰습니다.

청암은 1964년 대한중석사장에 취임하자마자 막장부터 살피는 현장경영과 함께 공정한 인사를 통해 만성적자였던 대한중석을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키며 회사를 안정시켰습니다.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철의 생산이 필요했기에 박정희 정부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고 제철소 건설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했습니다. 이 운명의 시기에 청암은 국가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종합제철소를 건설할 자본도 기술도 없었습니다. 단 한명의 경험을 가진 사람도 없었습니다. ‘한국에서의 종합제철소 건설은 경제성이 의심되기에, 종합제철소 건설을 연기하고 노동 및 기술 집약적인 기계공업 개발을 우선해야 한다.’ 세계은행과 IBRD는 개발도상국 한국의 제철소 건설은 무리한 시도라며 포기하라고 조언 했습니다.

“세계은행 안 된다고, IBRD1)가 안 된다고, IECOK2)가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 환경에서 천하의 누가 해 내느냐...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포항의 모래사장에서 엎어져 죽을 거다.. 나는 각오를 하고 있었습니다.
‘본때를 보여 주겠다! 해 내야겠다’는 결의가 더 강하게 생겼는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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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은 청년장교시절 사선에서 적들과 마주하며 가슴 속에 품었던 좌우명으로 절망적인 현실에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선조들의 고귀한 희생의 대가인 대일청구권 자금의 일부로 종합제철소를 짓는다는 하와이 구상으로 제철소를 건설할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냈습니다. 절대로 실패해서는 안될 사업인 포항제철소 건설의 대역사는 영일만 허허벌판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선조들의 희생의 대가로 제철소를 짓는 만큼 청암은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건설 현장을 누볐습니다. 제철소 건설에 실패한다면 모두 우향우해서 영일만에 빠져야 한다고 직원들을 독려했습니다.

“우리는 생명을 거는 거다. 만약에 성공하지 못 했을 때는 우리는 죽는다. 만일에 제철소 건설에 성공하지 못 했을 때는 우리는 죽는다. 뭐 어떻게 한다고 해서 국민들한테 속죄되는 것도 아니고 어쨌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철소 건설을 성공시키고 말아야 한다는 굳은 결의를 가지고 했죠.”

1973년 6월 9일 아침 7시 30분 마침내 쇳물이 터졌습니다. 청암은 용광로에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 넣어 한국에 쇳물을 선사한 것입니다. 제철보국은 청암의 신앙이었습니다. 양질의 철을 값싸게 대량으로 생산해 대한민국을 잘 사는 나라로 만드는 것, 그 길이 애국이라고 확신하며 종합제철소 완공의 꿈을 이루기까지 청암은 가족과 떨어져 오로지 제철소 현장에서 솔선수범하며 직원들에게 신뢰를 주었습니다.

“자본과 자원이 없고 경험과 기술이 없는 전무의 상태에서 포스코라는 종합제철소를 시작하여 5년 쯤 지나서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은 다음, 나는 동지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세대는 순교자처럼 희생하는 세대다. 우리 세대의 순교자적인 희생 위에서 다음 세대가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다.”

1992년 10월 2일, 포스코는 설립한지 불과 24년 만에 연 조강생산 2,100만톤 체제를 갖추며 세계 철강 역사상 유래가 없는 금자탑을 쌓아 올렸습니다.

포스코의 성공은 박태준 회장의 리더십과 비전 때문이다. 그는 정직, 철저, 완벽이라는 기본원칙을 충실하게 지켰다.
-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 & 서울대학교(포스코 성공사례 연구)

세계 최고의 대학들과 연구소들은 이를 포스코 신화라 감탄하며 이 신화는 오직 청암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청암은 종합제철소 건설이라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감사함을 표하며 스스로 철강인생 25년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박태준 회장은 한국에서의 제철소 건설은 불가능하다는 여론을 무릅쓰고 세계 굴지의 철강회사를 이룩했다. -스탠포드대학교 경영대학원, (한국의 발전과 포스코의 역할)

“‘나는 임자를 잘 알아.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어떤 고통을 당해도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기 한 몸 희생할 수 있는 인물만이 이 일을 할 수 있어. 아무 소리 말고 맡아.’하신 한마디 말씀으로 저를 조국 근대화의 제단으로 불러주신 각하의 절대적인 신뢰와 격려를 생각하면서 다만 머리 숙여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식민지배와 전쟁의 상흔으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에서 반세기만에 세계 10대 무역 대국이 된 대한민국, 세계가 한강의 기적이라 감탄하는 한국의 경제 성장에는 청암의 제철보국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1. 세계은행에 포함되어 있는 IBRD는 국제 부흥 개발 은행
  2. 대한 원조 국제 경제 협의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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