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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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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 박태준

청암의 고향인 임랑마을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청암의 삶이 녹아있는 은유화된 건축물
그의 인생과 철학을 살펴보고 자신을 비추어 보며 사색에 잠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

교육인

교육에 대한 헌신을 보여준 靑巖

교육은 그 어려웠던 시절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고, 오늘의 대한민국을 있게한 가장 큰 힘이었습니다.

종합제철소 건설 초기인 1960년대 말 지방 소도시 포항에는 변변한 주택도 없고, 아이들을 가르칠 교육시설도 거의 없어 직원들은 포항에 오기를 주저했습니다.
청암은 기업은 곧 사람이며, 직원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확신으로 제철소를 건설하기도 전에 직원 주택부터 만들었습니다.
이후에는 제철장학회를 설립하고 유치원을 세워 직원들에게 최상의 교육 복지를 제공했습니다.

청암은 교육은 천하의 공업이여 만인의 정성으로 이루어진다는 신념으로 제철장학회를 제철학원으로 확장하였습니다. 1978년 포항공업고등학교 인수를 시작으로 포스코 출현의 유치원 14개와 초·중·고교를 세워 교육 복구을 실천했습니다. 이처럼 청암은 황무지인 모래벌판에서 포항제철소를 완성해 나가면서도 국가의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임을 확신했습니다.
한국의 대학교육에 대한 새로운 지평을 여는 원대한 꿈을 실천하기 위해 청암은 다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쳤습니다.

“치열한 사막전과 같은 포항제철소 건설을 성공리에 마쳐가고 있을 즈음 동시대 사람들이 영일만의 기적이라는 찬사를 보내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던 그 십여 년 세월, 어느덧 저의 영혼에는 우리나라 과학기술과 교육을 세계일류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새로운 사명의식이 박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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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지 세계 최고가 되자며 인재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청암의 교육보국의 집념은 포항공과대학교, 바로 포스텍으로 집약되었습니다. 청암은 세계 뉴스에 공과대학을 직접 방문하며 최고 수준의 교수를 영입하기 위해 백방의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마침내 1986년 12월 포항공과대학이 개교하여 이듬해 3월 249명의 영재들로 첫 입학식을 거행했습니다.

“오늘 그 첫 걸음을 내딛게 되는 포항공대는 그동안 제철보국을 기업이념으로 한 포항제철이 지난 18년간 땀과 양심과 성실을 바쳐 이룩한 정신적, 물질적 노력의 총화로써 우리나라의 자주과학, 자주기술의 터전을 닦아나가는 선도자로서의 숭고한 이념과 막중한 사명을 가지고 출발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해 마지 않습니다.”

청암은 학교 운영에는 간섭하지 않으면서도 최고의 학생과 연구시설을 갖추기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으며 포스텍을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 중심대학으로 발전시켰습니다. 포스텍에 대한 지극한 애정은 그것이 국가의 미래를 위한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청암은 포스텍 명예 동창 회장이라는 직함을 가장 큰 영광이라며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내 평생의 직함 중에서 (포스텍 명예 동창회장이란 직함이) 가장 명예롭고 또 가장 다정스럽고 또 자랑스럽고 여러가지 형용사들을 총 동원해도 내 현 심정을 아마 여러분께 전달하기 어려울 겁니다.”
청암은 일생동안 학교를 방문할 때 가장 행복해했습니다. 학생들에게 항상 10년후의 청사진을 그려보라며 인생의 방향을 세우고 노력해야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여러분은 10년 뒤의 자기 모습을 그려 놓고 있습니까? 만약 그려 놓았다면 치밀하고 열정적으로 그 길을 가야 합니다. 만약 그려 놓지 않았다면 몇 날 며칠을 지새우더라도 10년 뒤의 자기 모습을 그려야 합니다.”

청암의 교육에 대한 헌신을 잊지않은 시민들과 포스텍 가족들 2천여명이 선금을 모아 2011년 12월 포스텍 노벨동산에 청암 조각상을 세웠습니다. 교육자로서의 청암의 보국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정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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