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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준 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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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 박태준

청암의 고향인 임랑마을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청암의 삶이 녹아있는 은유화된 건축물
그의 인생과 철학을 살펴보고 자신을 비추어 보며 사색에 잠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

정치인

靑巖 정치인 시절

청암은 일생동안 뜻을 세우고, 의로운 일을 하며 청렴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선비였습니다.

그는 철저한 선공후사와 솔선수범, 그리고 국가를 위해서라면 언제든 목숨을 거는 조국애로 정치, 경제, 교육 모든 면에서 발전해나가는 대한민국을 꿈꾸며 이를 평생에 걸쳐 실천했습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한 나라가 일어서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전제조건은 지도층과 엘리트 계층이 부패하지 않고 분명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입니다.”

청암은 1980년대 국가가 혼란에 빠지자 기꺼이 정치인이 되어 국가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권력이 건재해도 그의 청렴함과 강직함은 훼손하지 못했습니다. 1997년 대한민국이 IMF 사태 위기에 빠지며 국가와 국민이 어려워지자 청암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다시 정치인이 되었습니다. 국민통합이 시대적 과제라 판단한 청암은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화해, 영남과 호남의 화합을 외쳤습니다.

마지막 임명직 봉사라고 다짐하며 국무총리를 맡아 국가를 위해 헌신했던 청암은 만년에도 포스코 청암 재단을 통해 봉사상, 과학상, 교육상을 제정하고 청암 사이언스 펠로십, 포스코 아시아 펠로십, 지역 장학사업을 통해 대한민국과 인류에 대한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청암은 평생 포스코 주식 한 주도 갖지 않았고, 마지막 남은 재산인 자택마저도 처분해 사회 단체에 기부하는 무사심을 실천하며 오히려 조국을 위해 봉사할 수 있었던 인생이 영광이었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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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19일 포항 포스코 앞마당 체육관에서 창업 최고 경영자와 퇴직한 현장직원들이 19년만에 함께하는 재회의 자리가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청암은 영일만 모래 벌판을 누비며 함께 일했던 직원에게 감사의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여러분을 뵈니까 눈물부터 나옵니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정말 보고 싶었습니다. 여러분의 저의 인생에 가장 보람차고 가장 아름다운 선물을 안겨준 사람들입니다. 보고싶었던 직원 여러분! 우리의 추억이 포스코의 역사 속에, 조국의 현대사 속에 별처럼 반짝이고 있음을 잊어선 안 됩니다. 그것을 인생의 자부심과 긍지로 간직합시다.”

청암은 대한민국을 위한 애국심으로 자신에게 한없이 엄격했고 강인했지만, 그가 그토록 사랑하던 가족에게는 효심 지극한 아들이었고, 자상하고 배려깊은 남편이었고 따뜻하고 다정한 최고의 아버지였고, 인자한 할아버지였습니다. 군인으로 기업인으로 교육자로 정치인으로 맡은 소임을 회피하지 않고, 대한민국을 위해 일생을 봉사하고 또 봉사한 청암. 그는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 바친 참된 선비이며,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돌이켜보면 그 좌우명은 필생의 나침반이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것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길을 따라 걸어 온 내 삶의 여정에 대해 어떤 후회도 없습니다.”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 절대적 절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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